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평 윤씨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경기도]] [[파주시]]를 본관으로 하는 [[한국의 성씨]]. 경기도 [[파주]]는 본래 [[고구려]] [[장수왕]] 때 '파해평사현'이라 불렸고 [[신라]] [[경덕왕]]이 지금의 이름인 파평현으로 고쳤다. [[조선]] [[태조(조선)|태조]] 때 서원군과 파평현을 병합하여 원평군이라 하였다. 1461년 세조비 [[정희왕후]]의 관향이라 하여 파주목으로 승격하였고, 1895년 [[군(행정구역)|군]]이 되었다. 그리고 파평이란 지명은 현재도 [[파평면|파주시 산하의 파평면]]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. 고려 개국공신 윤신달의 가문으로서, 고려 전기 문숙공 [[윤관]] 장군 이래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명문 가문이다. 고려후기 [[충선왕]]때에는 종친과 혼인할 수 있는 15가문으로 구성된 [[권문세족#s-4|재상지종(宰相之宗)]]을 정했는데 그 중 하나가 파평 윤씨 가문이다. 또한 조선시대 [[청주 한씨]][* 청주 한씨가 왕비 6명으로 최다 배출. [[신의왕후]], [[소혜왕후]], [[장순왕후]], [[안순왕후]], [[공혜왕후]], [[인열왕후]].] 다음으로 [[여흥 민씨]]와 함께 왕비를 많이 배출하였으며[* 다만 파평 윤씨의 왕비들은 하나같이 정희왕후를 필두로 [[계유정난]]의 직접적인 수혜자로서 왕비가 된 것이라 조선 초기에만 몰려있고 결국 문정왕후를 마지막으로 조선 멸망까지 왕비는커녕 세자빈조차 배출하지 못했다. 그나마 모친이 파평 윤씨인 공회빈 윤씨가 있긴 한데 선조 즉위 및 [[인순왕후]] 사망 이후 세자빈 대우도 사실상 물건너가서 받지 못하며 살았고, 사망 당시가 임진왜란 직전인 탓에 상을 못치르고 시신이 방치되었다가 왜란으로 인해 유실되고 말았다.] [[정희왕후]], [[정현왕후]], [[장경왕후]], [[문정왕후]] 이렇게 넷이 파평윤씨 가문 출신이다.[* 폐비 윤씨는 애초에 폐비된 신분이고, 종묘사직에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왕비라 할 수 없다. [[광해군]]의 어머니 [[공빈 김씨]]가 한 때 공성왕후로 추존되었으나, 광해군이 폐위되자 왕비로 치지않는 것과 동일하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